연말은 인생의 뭔가 아주 기본적인 것, 디폴트부터 잘못되어 있다는 난데없는 우울감에 빠져들 수 있는 위험한 구간이다. 신간 코너에서 <나는 인생의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바꿔보기로 했다>(2021)라는 자기계발서를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그런데 책 제목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 제목이 22자라니, 이 책의 편집자는 마케팅의 기본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저자 개리 비숍
"이번 생은 다음 생을 위한 리허설이 아니다. 지금이 전부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삶이다."라고 외치는 이 책의 저자 개리 비숍은 "더 나은 삶을 원하는 이들의 마음을 단번에 휘어잡는" 동기부여계의 천재라고 한다. "군말 빼고 핵심만 이야기하는 저자"라니 맘에 쏙 들었다.
개리 비숍의 첫 책인 <시작의 기술>은 미국에서만 100만 부 이상이 팔렸다고 했다. 높은 담 너머에 있는 자기계발서인지라 시작의 기술은 읽지 않았다.
저자의 PR 보다 나는 이 책 뒤표지 안쪽에 인쇄되어 있는 독자의 서평이 눈길을 확 끌었다.
"책을 펴서 읽어라. 그것을 씹어 삼켜라. 빌어먹을 네 인생을 책임져라. 개리 비숍이 전하는 지혜는 자신만의 지옥에서 깨어나 원하는 삶을 살기 시작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다."
- 독자 Bil***
<나는 인생의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바꿔보기로 했다>를 다 읽고 다시 독자 Bil***의 서평을 읽어 보니 굉장히 잘 쓴 서평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저렇게 압도적인 서평을 짤막하게 남길 수 있지라는 경탄마저 들었다. 그랬다. 이 책은 책을 펴서 읽고, 닥치고 그것을 씹어 삼켜야 되는 책이다. 아니면 뱉던지!
이 책은 하찮은 불운 따위에 짓눌리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하여 두려움과 성공, 사랑, 상실을 우리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저자 나름의 대처방법들을 담았다.
두려움
예컨대 두려움에 대하여 개리 비숍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을 멈추게 하는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이든 혹은 타인이든 누군가 당신을 평가질하는 것을 피하고 싶은 욕구다. 그게 당신을 붙들고 있다. 당신이 준비한 변명들만 잔뜩 늘어놓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변명들이 당신 앞길을 막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당신을 가로막는 것은 변명 자체가 아니다. 당신이 만들어놓은 조그만 스토리 뒤에 숨어 있는 무언가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하는, 늘 가시지 않는 걱정 뒤에 도사리는 것 말이다.(41쪽)
그러니 우주에 두려움 따위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그래서 두려움은 당신을 해칠 아무런 힘이 없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두려움을 필요가 없다는 말.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저 숨 한번 크게 깊게 들이쉬고 "자, 해보자"라는 말 한다미로 그런 일들을 해내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다 맞는 말이다. 그냥 숨 한번 크게 깊게 들이쉬고 자 한번 해보자 하면 되는 것을, 그 단순한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롤러코스터를 즐기는 사람이 반면 기겁을 하는 사람도 있다. 발표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고, 즐기는 사람도 있다. 그 차이는 뭘까?
저자는 두려움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닌, 당신이 만들어낸 그림자에 불과한 감정이라고 말한다. 두려움이 문제가 아니라 그 두려움이 당신을 장악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더 문제라는 설명이다. 두려움의 감정을 없앨 수 없는 것이라면, 두려움과 함께 해낼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다른 버전이다.
개리 비숍은 성공에 대하여도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것은 기분이 아니라 행동이기 때문에"(103쪽) 기분이 꿀꿀하거나 상관없이 무조건 행동을 시작하라고 주문한다. 사랑에 대하여도 그 사람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까지, 그 사람의 전체를 사랑하면 된다고 말한다.
인생이란
이럴 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말은 쉽다." 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게 잘 되지 않는 게 인간이다. 책을 다 읽고도 저자에게 설득당하지 못한 셈이다. 나는 불량한 독자다. 마음을 단번에 휘어잡는 동기부여의 천재가 하는 말에도 통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결국 나는 인생의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바꿔보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아주 기본적인 것을 바꾸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사춘기가 지나면 인간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자꾸만 기본적인 것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 드는 것도 인간이다.
그럴 때는 이러한 책들을 가볍게 읽으면 된다. 욕망에 대응하는 것인 인생일 것이므로.
이 책은 200페이지다. 대개의 책은 줄간격을 띄워 단락을 구분하지 않는다. 가끔 스트레오 타입을 벗어난 책을 본다. 그럴 때면 신선하거나 이질감을 느끼곤 한다. 심하면 분량을 늘리기 위한 꼼수로 인식되기도 한다. 과도하게 줄 간격을 늘어트린 글은 저자를 얕잡아 보는 역효과를 낸다.
이 책의 원제는 "Wise as F**k"이다. 이 단순한 제목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아주 길게 늘어졌다. 차라리 원제의 어감을 살려서 책 제목도 "존나 현명하게" 정도로 번역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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