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집콕에 어울리는 재미있는 산문집 한 권 소개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알찬 여행을 위하여'라는 부제를 단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의 <내 방 여행하는 법>에요. 저자 이름이 특이하고 생소합니다.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는 1763년에 태어났고 <내 방 여행하는 법>은 1794년에 쓴 책이라고 해요. 그러니 우리가 잘 모르는 건 당연하겠죠. 그는 사보이아의 귀족 가문 출신 군인 장교인데 그 당시 불법인 결투를 하여 42일간 연금에 처해져요.
42일 동안 꼼짝없이 연금을 당했으니 몽상을 하고 책을 읽고 글 쓰는 일 외에 방 안에서 딱히 할 일이 무엇이 있었겠어요. 드 메스트르는 연금을 당하지 않았더라도 이런 종류의 글을 쓸 생각이 있었다고 변명을 하는데, 풋 하고 웃음이 나왔어요.
<내 방 여행하는 법>을 읽어보니 어찌나 내 처지와 닮았던지 공감이 팍팍 되었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내 방 여행이지만요.
방에는 의자가 무려 여섯 개, 탁자 두 개, 책상 한 개, 거울 한 개, 그리고 장미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두 겹의 매트리스가 깔린 침대! 그리고 방 벽에는 판화와 그림들이 많이 걸려 있구요.
거기다 애견 '로진'이 상냥스럽게 친구가 되어주고 더할나위 없이 성실한 하인 '조아네티'가 충심으로 보필하고 있으니 저자가 말한대로 '아이사의 군주들이 누렸음직한 웅장함과 안락함에 견줄 만'하니까요.
역시 귀족 출신은 다르다는 것, 그치만 방이 아무리 웅장한들 방은 방에 불과하잖아요. 거기다 갇힌 신세라면 처량할 듯도 한데도 42일이 끝나는 시점에 자신에게 연금을 처한 당국에 감사하는 속내를 내비치는 아량을 지닌 인물이에요.
저자 드 메스트르가 내 방을 여행하는 법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와요. '의자를 지나 북쪽으로 방향을 틀면 방 안쪽에 침대가 놓여 있는데 보기만 해도 아주 좋다'라고 해요.
저자는 특히 침대를 아끼고 사랑하는데, 은은한 온기가 도는 침대에서 사색하는 것을 유독 좋아하기 때문이라네요. 저자의 말에 의하면 장미색은 기쁨을, 흰색은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침대의 화사한 색상이 기쁨을 배가시켜준다고 합니다.
드 메스트르는 실내복을 근사하게도 '여행용 외투'라고 불러요. 마인드가 참 긍정적이지 않나요. 여행용 외투를 입고 의자를 조금씩 움직여가며 하루종일 방구석 여행을 하는 셈이지요. 어떤 날은 벽난로 앞에서 여행을 잠시 멈추고 점심을 먹기도 하고요.
하루는 책상에 거의 다 이르렀을 때, 의자에서 넘어져 마닥에 널브러지는 일이 일어나요. 저자는 이를 '목숨까지 잃을 뻔한 사건'이라고 호들갑을 떨어요. 적선을 구하는 어떤 거지의 방문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무작정 화부터 내는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글들이 읽는 맛을 더해요.
저자는 군인이지만 화가이기도 해서 그의 방에 걸린 판화와 그림들을 독자들에게 애정을 갖고 어떤 큐레이트보다 더 재미있게 설명을 해요. 이 책에도 삽화들이 꽤 있어요. 드 메스트르는 다방면으로 재능이 있는 작가인 것 같아요.
방에 걸린 명화들을 쭉 소개한 다음 다음 작품으로 시선을 옮기는 순간 자신이 소개한 그 모든 명화들을 빛을 잃고 말 것이라고 장담을 해요. 다음 독자들의 위한 '걸작 중의 걸작'이라는 것이에요.
"언제나 공정하고 올바른 거울은 자신을 비춘 자에게 그것이 청춘의 홍조가 되었든 노년의 주름이 되었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왜곡하거나 알랑거리는 법이 없다."
저자가 말하는 걸작 중의 걸작은 바로 '거울'이라는 것인데요. 이 얼마나 멋진 비유입니까. 거울은 붙박이 여행자에게 흥미로운 사색과 관찰을 수업이 제공하고, 취향에 오류가 없고 판단에 흔들림이 없는 여인들은 집 안에 들어설 때면 제일 먼저 거울이라는 이 회화 작품에 눈길을 던진다는 것이에요.
여러분은 자기 자신의 얼굴이 최고의 회화 작품이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시나요?
이 책은 우연에 의해 출간되었다고 하는데요. 드 메스트라가 형 조제프에게 그냥 원고를 보여주었을 뿐인데, 형이 재미있다며 알아서 익명으로 책을 출간하였다고 해요.(이렇게 알아서 해주는 오빠를 만나야 된다는!)
책이 인기를 얻자 드 메스트라는 <한밤중, 내 방 여행하는 법>(1798)을 비롯해 몇 권의 책을 더 냈다고 합니다. 우연히 작가가 된 것이죠!
프랑스어 쓰여진 <내 방 여행하는 법>은 훗날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역자는 밝히고 있는데요. 벵자멩 콩스탕,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프리드리히 니체, 마샤두 데 아시스, 마르셀 프루스트, 알베르 카뮈,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수전 손택... 그리고 현대의 알랭 드 보통에 이르기까지.
오늘 밤은 기발한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덕분에 아주 늦은 시각임에도 즐거운 내 방 여행을 했습니다.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상상력으로 빛나는 드 메스트르의 산문과 함께 내 방을 여행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 드려요.
아주 얇은 책으로 재미있게 술술 잘 읽히는 책입니다. 내 방을 여행에 이보다 더 좋은 여행 안내서적은 없을 것 같습니다. 벌써 새벽 3시가 다 되었으니 이만 내 방 여행을 끝내고 장미색은 아니지만 내 침대에 들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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