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녀지간의 아주 어려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딸아이가 아빠를 개무시한다'는 사연입니다. 물론 저의 이야기는 아니고 지인의 이야기입니다. 지인과는 십여 년 전, 아이들이 어렸을 때 대학교 부설 영재원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첫 아이가 대학교 부설 영재교육원에 다니고 있을 때, 지인을 만났습니다. 대학교 부설 영재원은 보통 엄마들이 아이들 수송(?)을 책임지지만, 어찌된 셈인지 저도 그랬고 지인도 아이를 수송하게 되어 자연히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첫째 아이가 영재원을 졸업하고, 둘째 아이도 대학교 부설 영재 교육원에 다녔는데, 지인의 딸 아이도 다니는 게 아니겠습니까? 성향도 비슷했던터라 지인과는 마치 죽마고우처럼, 부랄 친구마냥 친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첫째가 아들이고 둘째는 딸이라는 공통점도 같았으니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또 대학교 부설 영재원 출신은 과고를 간다는 전통(?)마저도 둘째 아이들이 깨트렸으니 더욱 친밀감이 들었습니다.
둘 다 예고를 갔으니 이게 무슨 인연인가 싶었습니다. 지인의 딸과 우리 딸은 학교는 달랐지만 같은 권역이라 지인과 함께 차를 타고 가 딸들을 격려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딸 아이들이 대학마저 고교 때의 전공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개척했을 때 소름마저 일었습니다.
그것도 같은 대학을 가네요? 지인의 딸은 건축을, 우리 딸은 컴공을요······. 그러니 '운명'이란 말이 진짜 와닿더라고요.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하고요.
그러다 보니 지인과는 술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아무리 친구라지만 실토하기 어려운 말을 하더군요. 바로 오늘의 글 제목입니다. "딸이 아빠를 개무시한다"는 거예요.
저는 아이들에게 최소한 민주적인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는 1인입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지인은 저보다는 훨씬 민주적이고, 더욱이 같은 세대에서 눈씻고 찾아볼래야 볼 수 없는 타고난 페미니스트에다 말할 수 없이 소탈한 성격인데,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어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원인을 찾을 수는 없었어요. 제 딸 또한 가끔 그러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지인의 말을 들어보면 그 정도가 정말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인의 딸은 아빠한테 심지어 이런다는 거예요. "왜 아빠는 자꾸 내 눈에 띄어? 내가 집에 있을 때는 아빠가 눈에 안 띄였면 좋겠어"
글쎄요. 제가 알기로는 지인의 딸 역시 맹랑한 친구였는데, 지인이 술 김에 조금 과장해서 말한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지인이 불쌍해 보이고 가슴이 짠해집니다.
저도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아빠와 마찬가지로 지인 역시 딸을 위해서 거의 모든 것을 했는데, 딸이 저렇게까지 나오니까 지인의 입장에서는 인생이 너무 허망할 것 같기도 합니다.
지인에게 뭐라 위로할 말이 없어서 세월이 가면 그 딸도 자네 마음을 알 거야 했지만 자신은 없었습니다. 제 딸 또한 저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 때가 많거든요·····.
그러니까, 오늘 글은 일종의 하소연입니다. 딸 아이 연배가 보면 역시 꼰대라고 할 것이고, 할배들이 보면 '쯧쯧' 혀를 차겠지요.
지인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이렇게 글이라도 써봅니다. 그 친구나 나나 혹시 아이들에게 그런 소리를 들을 만큼 꼰대 짓을 했는지 돌이켜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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