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섬뜩한 미래
개인을 파괴하는 극단적 전체주의의 디스토피아 소설의 대표작
전체주의 사회의 공포를 묘사한 디스토피아 소설 <1984>는 조지 오웰이 1949년 발표한 작품이다. 1948년에 집필을 마친 조지 오웰은 '48'을 뒤바꾸어 소설의 제목으로 삼았다.
이 작품은 예브게니 자먀찐의 <우리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더불어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힌다. 특히 1984는 20세기에 출판된 책 중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이 큰 명작으로 '빅 브라더'는 개인 사생활 침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차용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작가 조지 오웰
조지 오웰은 필명이며,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 1903년, 인도 벵골에서 영국인 하급 관리의 자녀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상류층 아이들에게서 차별을 심하게 당하며 계급 차이를 실감했다. 1922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인도 제국 경찰로 미얀마(당시 버마)에 갔으나, '압제의 일원'이라는 환멸감으로 사직한다.
그 후 유럽으로 돌아와 파리와 런던에서 부랑자 생활을 하다 영국 노동자들의 삶에 관한 조사활동에 참여한다. 전체주의를 혐오했던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도 참가했다. 그 체험을 기록한 <카탈루냐 찬가>는 뛰어난 기록문학으로 꼽힌다.
1945년, 2차 세계 대전 직후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을 우화로 그린 <동물농장>을 발표하여 명성을 얻었으나 그해 아내를 잃고 자신도 폐결핵으로 여러 번 입원했다.
1949년, 전체주의 국가의 공포를 묘사한 <1984>를 발표하여 조지 오웰은 20세기 최고의 작가가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950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원작 소설의 영화화
조지 오웰의 원작 소설은 영국의 마이크 래드포드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마이크 래드포드는 "이 영화는 1984년 4월에서 6월까지 런던 주변에서 촬영되었고, 원작자가 상상한 설정 및 기간과 일치한다"고 엔딩 크레딧에서 밝혔다.
영화는 러닝타임 110분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주인공을 맡은 남여 배우의 노출수위가 비교적 높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 역에 존 허트, 오브라이언 역에는 리처드 버튼이 출연했다. 윈스턴의 애인 줄리아 역에는 수잔나 해밀턴이 전라노출로 열연했으나 소설에서 그린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살리지는 못했다.
이 영화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두 번 결혼 것으로 유명한 리처드 버튼의 마지막 출연작이 되었다. 그는 1984년 5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으로 <클레오파트라>와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가 있다.
1984 줄거리와 결말
본 리뷰는 민음사에서 디 에션셜 시리즈로 출간한 <조지 오웰>(2022년 2월 4일 발행)에 수록된 원작 소설의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영화와 비교하기로 한다.
디 에션셜 <조지 오웰>은 장편 소설 <1984>와 일곱 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었다. 정치한 문장이 빛나는 조지 오웰의 일곱 편의 에세이를 읽고 원작을 읽는다면, 작가가 그리고자 했던 전체주의 사회를 보다 입체적으로 실감하는데 도움이 된다.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것이다.”
-조지 오웰
수록된 에세이 7편은 작가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나는 왜 쓰는가」를 비롯해 「교수형」, 「코끼리를 쏘다」와 ‘오웰식 글쓰기’의 원칙을 역설하는 「정치와 영어」 등이다.
1984 설정, 세계관
세계는 핵전쟁 이후 1984년, 세 개의 초강대국- 오세아니아와 유라시아, 동아시아가 삼분하여 분할 통치하고 있다. 이들 세 열강은 두 개의 나라가 동맹한다고 해도 한 국가를 점령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의 균형을 이루며 끊임없이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을 합병해 오세아니아를 세운 당(The Party)은 1960년대 당 지도부를 대숙청하여 도주한 골드스타인을 제외하곤 모두 증발시키거나 당에게 굴복시켰다. 오직 '빅 브라더'만이 남아 일당, 일인 독재 국가가 되었다.
빅 브라더로 대표되는 당(The Party)은 영사(英社; 영국 사회주의, English Socialism. 신어(Newspeak)로는 Ingsoc) 사상으로 무장하여 자본가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내부 당원, 외부 당원, 프롤의 3계급으로 나누어 통치한다.
오세아니아의 사실상의 수도는 런던이 속한 제1공대(Airstrip one)이다. 제1공대는 3억 인구에 내부 당원 2%, 외부 당원 13%, 프롤(레터리아, 노동자) 85%로 구성되어 있다.
당(The Party)은 전쟁을 관장하는 평화부,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애정부, 경제문제를 책임지는 풍요부, 정보와 교육, 예술을 관장하는 진리부로 나누어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중을 철저하게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극단적인 전체주의 사회를 완성했다.
대중을 감시하는 대표적인 시스템은 직장과 각 가정에 설치되어 있는 텔레스크린이다. 텔레스크린은 24시간 도감청이 가능하다. 어떠한 소리나 표정, 작은 움직임, 심지어 숨소리마저도 포착해낸다.
일기 쓰기를 결심하는 윈스턴 스미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오세아니아의 외부 당원으로 승리 맨션 7층에 거주하며 진리부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임무는 진실부의 지시에 따라 이미 발간된 신문, 잡지, 기타 자료들을 신어(新語)로 날조하여 과거를 수정함으로써 당을 전지전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한다.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
- 당의 구호
예컨대 올해 옥수수 생산량이 50톤이라면, 작년 생산량이 60톤이었음에도 40톤으로 수정하여 올해 생산량이 25% 증가하였다고 과거를 날조하는 것이다.
텔레스크린을 통해 그 뉴스가 발표되면 대중은 환호성을 터트린다. 대중들은 비록 식량이 없어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말이다. 이들은 설탕 대신 사카린을, 진짜 술 대신 승리주라는 가짜 술을 마시며 연명하고 있다.
당과 빅 브라더는 과거를 지배함으로써 심지어 2+2=5라는 것도 대중들이 믿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당은 정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대중들을 조종하고 있다.
오세아니아에서 성교는 역겨운 행위로 간주되었고, 성적 쾌락마저 부정된다. 아이는 모두 인공수정으로 낳고, 공공기관에서 양육하는 시스템이다.
원스턴은 결혼을 했으나 아내와 별거 중이다. 그의 아내는 당에 완전히 세뇌되어 섹스를 할 때마다 나무토막이 되었음에도 아이를 갖기 위해 의무적으로 섹스를 요구해 어쩔 수 없이 별거하게 된 것이다.
오세아니아의 감시체계는 아주 극악했다. 거실에서는 텔레스크린에서 빅 브라더가 항상 감시하고 있었고, 야외에서는 사상경찰과 헬리콥터, 마이크로폰이 은밀하게 대중들을 감시했다.
그럼에도 윈스턴은 중고 가게에서 낡고 오래된 공책 한 권을 사서 텔레스크린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자신의 거실 한 구석에 숨겨둔다. 소설은 거실 한 구석의 책상 서랍에 공책을 숨겨둔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영화는 벽돌 안에 숨겨둔 것으로 영상화된다.
이렇듯, 영화 1984는 소설과 미세하게 차이가 있을 뿐, 큰 줄거리는 대체적으로 원작을 충실하게 따라갔다. 문제는 소설이 그리고 있는 오세아니아의 암울한 상황, 무엇보다 주인공 윈스턴이 전체주의에 대항하여 고뇌하는 정신을 영상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윈스턴은 펜에 잉크를 찍은 다음, 딱 1초 동안 머뭇거리다 숨겨둔 공책에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일기 쓰기를 금지하는 법은 없었으나 그것은 명백히 사상범에 해당될 극히 위험한 행동임을 윈스턴은 잘 알고 있었다.
윈스턴이 작고 서투른 글씨로 일기장에 처음 쓴 글씨는 '1984년 4월 4일'이었다. 그에게 일기장은 빅 브라더에 대항해 한 인간이 남기는 고독한 기록이었다. 원스턴은 2+2=4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2+2=5라고 할지라도 단 한 사람만이라도 2+2=4라고 사유할 수 있는 자유를 일기장에 기록하는 것이다. 자명한 진리마저 부정당한다면 인간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희망이 있다면, 프롤에게 있음이 분명하다. 무시당하며 몰려다니는 그들에게서만, 오세아니아 인구의 85퍼센트를 차지하는 그 대중에게서만 당을 부술 힘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의식이 생기기 전에는 그들이 봉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봉기하기 전에는 의식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윈스턴, 줄리아와 밀애를 시작하다
어느 날, 윈스턴은 진리부 건물 복도에서 동료 줄리아가 은밀하게 건네주는 쪽지를 받는다. "당신을 사랑해요" 그날 이후 윈스턴과 줄리아는 위험한 만남을 이어가고, 용감하게도 교외의 비밀스러운 숲에서 관계를 가지기까지 한다.
급기야 윈스턴은 대담무쌍하게도 골동품 가게 2층의 방을 빌린다. 줄리아와 밀애의 장소로 삼기 위해서다. 24시간 감시체계가 작동하는 오세아니아에서 은신처에서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행동이었다.
윈스턴은 자신이 자유로운 인간적인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기꺼이 밀애를 했고, 줄리아는 오직 성적 본능에 충실한 여자로서의 쾌락을 즐기기 위해 당의 감시망을 뚫고 그와 아슬아슬한 만남을 이어간다.
윈스턴이 말한 대로 줄리아는 허리 아래쪽만 반역자였다. 그녀는 전쟁조차도 실재 일어나고 있는 전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민에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속임수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줄리아의 관심사는 오직 허리 아래쪽에만 있었고, 윈스턴은 형이상학적인 세계에서만 레지스탕스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둘은 그들이 곧 잡혀갈 것이라는 걸 직감하면서도 밀애를 계속한다.
그리고 윈스턴과 줄리아는 잡혀가더라도, 아무리 그들이 구금하고 폭행하고 모진 고문을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까지 지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모진 고문 끝에 자백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진심에서 우러난 자백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저 살기 위한 거짓 고백이기 때문에 결코 속마음이 바뀐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말(스포)
그들이 걱정하고 있었던 대로 마침내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골동품 가게 2층 은신처에서 둘이 발거 벗고 사랑을 나눈 직후였다. 벽에 걸려 있었던 그림이 떨어지며 텔레스크린이 나타났다.
금속성 목소리가 "그 자리에 꼼짝 말고 있어라" 명령했고, 요란한 구두 소리와 함께 창문이 깨지며 검은 제복의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사실인즉슨, 골동품 가게 주인 채링턴 씨는 노인으로 분장한 사상경찰이었고, 그에게 접근하여 골든스타인이 집필했다는 비밀 서적을 전해준 동료 오브라이언도 그를 쭉 감시해온 사상경찰이었던 것이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체포되어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심한 고문을 받는다. 원스턴을 고문하는 자는 다름 아닌, 그가 그렇게도 믿었던 오브라이언이었다.
마지막에는 '101'호로 끌려가 윈스턴이 극강의 공포심을 느끼는 쥐에게 얼굴을 뜯어 먹히려는 찰나 전향하여 풀려난다.
마침내 윈스턴은 그의 속마음마저도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소설 1984의 마지막 문장처럼 윈스턴은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흰 눈처럼 깨끗해진 영혼의 상태에서 총알이 그의 머리에 박히기를 소망하는 행복한 몽상에 잠기며 소설과 영화는 끝난다.
이 소설에서 백미는 윈스턴이 완전히 세뇌되어 마침내 빅 브라더에게 교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영화를 보면, 소설과는 달리 전체주의의 공포는 둘째치고 서사의 전개도 밋밋하기 그지없다. 이는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이 부족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작가가 정치하게 묘사한 윈스턴의 정신세계를 영상화하는데 실패한 데서 기인한다.
소설의 부록
이 소설은 부록으로 신어의 원리를 싣고 있다. 신어는 오세아니아의 공용어로서 영사, 즉 영국 사회주의의 이념적인 필요성에 의해 고안된 언어라고 밝히고 있다.
1984년까지만 해도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신어를 유일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고, <타임스>의 주요 기사는 전문가들에 의해 신어로 쓰였다.
2050년까지는 결국 신어가 구어(이른바 표준 영어)를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고 작가는 말한다. 신어가 일단 전면적으로 채택되고 구어가 잊히게 되면 이단적 사상, 즉 영사의 원칙에 위배되는 사상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오세아니아 신어의 특징은 어휘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는 영사 사상에 반하는 어휘들을 삭제하고 어휘의 2차적 의미도 제거하게 때문이다.
작가 조지 오웰은 수필 "정치와 영어"에서 독재정권이 통치했던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의 언어가 지난 십 년에서 십오 년 사이에 악화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휘의 소멸은 사고의 소멸도 함께 부른다. 이런 관점에서 부록으로 첨부된 신어의 원리를 검토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키고, 언어 역시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지 오웰이 마지막 남긴 이 소설은 정보가 한 곳에 집중되면 권력의 속성이 늘 그렇듯 부패할 공산이 크며, 그 피해는 오롯이 개인에게 돌아가게 되리라는 걸 상기 시킨다.
요즈음은 어딜 가나 CCTV가 없는 곳이 없고, 스마트기기들은 촘촘하게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다. 어디선가 괴물로 자라난 빅 브라더가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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