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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야기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를 생각하며 담장에 핀 꽃들을 모았습니다

by 다독다감 2021. 5. 7.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생각하며 전통시장 가는 길 담장에 핀 꽃들을 모아봤습니다. 영화감독 김초희가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에서 인용하며 심금을 울렸던 시입니다.

담장에 핀 꽃들은 모두 전통시장 가는 길에 찍은 사진들입니다. 김신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2021)를 읽고 스쳐 지나가는 일상이나마 한 시절의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장미꽃들이 탐스럽게 피어난 어느 집 담장입니다.

나태주 시인은1945년 충남 서천에 태어나 초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고 2007년 정년 퇴임했습니다.

1969년 등단한 나태주 시인은 충남 공주시에서 향토시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5년이 되어서야 나태주 시인은 시 '풀꽃'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늦깎이 시인이랄까요?

수수한 일상의 소중함을 비유적으로 노래한 나태주 시인의 '폴꽃'은 아주 짧은 시입니다. '풀꽃'은 2003년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발표한 시입니다.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패러디 시들을 닮은 무성한 나무잎들이 덮은 담장

짧은 길이의 시 '풀꽃'이 인기를 끌자 수많은 패러디 시 '풀꽃'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풀꽃' 패러디 시들도 해학이 만만치 않습니다.

풀꽃 패러디 시들

스치듯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면 큰일 난다. 나만 그렇다. 
흠칫 보아야 예쁘다. 대충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만 그렇다. 
멀리서 보아야 예쁘다. 잠깐 보아야 사랑스럽다. 내 남편만 그렇다. 
자세히 봤더니 어려웠다. 오래 봤더니 더 어려웠다. 중2 수학문제가 그렇다.

나태주 시인 또한 '풀꽃2'와 '풀꽃 3'을 발표하였습니다.
풀꽃 2는 함축성과 리듬감이 살짝 떨어집니다.

풀꽃 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풀꽃 3'은 이게 시인가 싶을 정도로 정말 짧습니다.

풀꽃 3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나무잎과 꽃잎이 어우러진 저런 풍경을 좋아합니다.

시적 함축성은 약하지만 오히려 나태주 시인의 '사랑에 답하다'라는 시가 더 좋습니다.

사랑에 답하다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설 어린이 집 담장에 소담하게 핀 하얀 꽃망울들입니다.

전통시장 가는 길에는 사설 어린이 집도 있습니다.

예쁘게 핀 꽃들을 보고 등원하는 아이들은 꽃처럼 예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것 같습니다.

물소리와 새소리가 들리는 산책로를 걷다보면 마음이 풀리기도 합니다.

전통시장에서 일미 오천원치와 된장 고추무침 오천 원 치만 샀습니다. 저를 믿고 뭉쳐 사는 갓사친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늘같이 우울하고 기력이 없을 땐 언니네 반찬가게 신세를 집니다.

담장에 핀 꽃은 아니지만 저 풍경을 보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길 양 옆으로 흐르는 개울 물소리 들으며 다시 힘을 내어 걷는 것도 좋습니다.

교각 위에도 페튜니아가 분홍으로 예쁘게 꽃을 피웠습니다.

이 동네에 살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전통 시장을 갔다 오는 길에도 꽃길을 지나쳐 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담한 사이즈의 공원 길도 마음에 듭니다.

옛 하천을 그대로 살리고 길을 내고 공원을 만든 정성이 좋습니다. 

공원에 만들어진 작은 오솔길

그리고 무엇보다 공원 사잇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행복감. 장미꽃과 산딸나무 꽃이 시샘하듯 고개를 내밀고 있는 오솔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 '들길을 걸으며'를 생각하며 걷는 것도 행복한 일입니다.

들길을 걸으며

1 세상에 그대를 만난 건 내게 얼마나 행운이었나 그대 생각 내게 머물므로 나의 세상은 빛나는 세상이 됩니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대 한 사람 이제는 내 가슴에 별이 된 사람 그대 생각 내게 머물므로 나의 세상은 따뜻한 세상이 됩니다.

2 어제도 들길을 걸으며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들길을 걸으며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제 내 발에 밟힌 풀잎이 오늘 새롭게 일어나 바람에 떨고 있는 걸 나는 봅니다 나도 당신 발에 밟히면서 새로워지는 풀잎이면 합니다 당신 앞에 여리게 떠는 풀잎이면 합니다. 

집으로 올라가는 초입 풍경

집으로 올라가는 초입은 단풍나무와 소나무들이 양 옆으로 터널을 이루며 이름 모르는 산새들 울음소리 청량합니다. 산골에 살면서 맛볼 수 있는 소소한 행복감입니다.

이 풍경과 잘 어울리는 나태주 시인의 시는 '행복'입니다.

행복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 부를 노래 있다는 것

내년 봄 날에도 오늘 본 풍경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미래의 그 날에도 담장 위 핀 꽃들을 보며 오늘을 추억하고 싶습니다.

오늘 갓사친 H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기 위해 시골에 갔고 W는 치과검진을 갔습니다. 사는 동안 모두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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