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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야기

황정은 백의 그림자, 은교와 무재의 사랑의 행로

by 다독다감 2022. 3. 21.

우리 시대의 소설가 황정은의 첫 장편소설

우리 시대의 소설가 황정은의 첫 장편 소설 <백의 그림자>(2010)가 오랫동안 절판되었다가 2022년 2월 창비에서 다시 복간되었습니다. 출간 직후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은 백의 그림자.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스테디셀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소설은 두 남여의 연애를 그리고 있는데, 등장인물들 모두 그림자가 일어서는 경험을 합니다. 단순히 소재로만 보면 판타지 소설로도 볼 수 있지만, 부록으로 실린 작품 해설에서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지적하듯이 그림자는 '환상'보다는 '극極현실'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작가의 이러한 경향은 그의 단편 <대니 드비토>나 <모자>에서 보이기도 합니다. 황정은의 다른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에서 '나나'는 전심전력의 사랑을 경계하고 있지만, 이러한 판타지는 작가의 전심전력이 치환된 상징이 아닐까 합니다.

그럼, 우리들의 주인공 은교 씨와 무재 씨가 서로 힘겹게 사랑하는 모습을 담은 백의 그림자, 은교와 무재의 사랑의 행로를 따라갈 볼까요? 언제까지나 함께 동행하고픈 사랑의 행로입니다.

2022년 복간판 표지

소설 백의 그림자 줄거리

은교 씨와 무재 씨

주인공 은교 씨는 도심에 있는 전자상가 '나'동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가동과 나동과 다동과 라동과 마동으로 구별되는 상가는 본래 분리되어 있었던 다섯 개의 건물이었으나 사십여 년이 흐르는 동안 여기저기 개축되어서 어디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얼핏 봐서는 알 수 없는 구조로 연결된 전자상가입니다.

은교 씨는 그 건물 속에서 무재 씨를 만났습니다. 은교 씨는 여 씨 아저씨의 앰프 수리실에서 접수와 심부름을 맡고 있었고 무재 씨는 트랜스를 만드는 공방의 견습공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토요일 단체 소풍을 갔던 날 은교 씨는 숲 속에서 길을 잃고 맙니다. 은교 씨는 처음에 그림자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덤불을 벌리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저쪽도 길인가 싶고 뒷모습이 낯익기도 해서 들어갔습니다.

들어갈수록 숲은 깊어지는데 자꾸 들어갈수록 뒷모습에 이끌려서 자꾸자꾸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장편 소설 <백의 그림자>의 첫 문장은 강렬합니다.

숲에서 그림자를 보았다.

그때 "은교 씨"하고 부르는 소리에 문득 뒤를 돌아보았더니 무재 씨가 서있었습니다. 무재 씨는 "그림자 같은 건 따라가지 마세요"라고 은교 씨에게 말합니다.

어딘가에서 다름없는 자신의 모습을 목격했다면 그것은 그림자, 그림자라는 것은 한번 일어서기 시작하면 참으로 집요하기 때문에 그 몸은 만사 끝장, 일단 일어선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고는 배겨 낼 수 없으니 살 수가 없다, 등의 이야기를 아무 곳에서나 불쑥 말하곤 하다가 귀신같은 모습으로 죽어간 아버지 이야기를 무재 씨는 들려줍니다. 

방향을 알 수 없는 숲 속에서 여우비에 몸은 젖어가는데 둘은 쉽게 길을 찾지 못해 숲이 자아내는 깊은 냉기에 두렵기까지 합니다. 두 사람은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하면서 계속 걷습니다. 길을 잃은 숲 속에서 나누는 대화를 잠시 들어볼게요. 

무재 씨, 하고 내가 말했다.
섹스 말인데요. 그게 그렇게 좋을까요.
좋지 않을까요.
좋을까요.
좋으니까 아이를 몇이나 낳는 부부도 있는 거고.
글쎄 좋을지.
궁금해요?
그냥 궁금해서요.
여기서 나간 면 해 볼까요.
나갈 수 있을까요.
언제까지고 숲이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나는 좋아하는 사람하고 하고 싶은데요.
좋아하면 되지요.
누구를요.
나를요.
글쎄요.
나는 좋아합니다.
누구를요.
은교 씨를요.
농담하지 마세요.
아니요. 좋아해요. 은교 씨를 좋아합니다.

은교 씨와 무재 씨의 대화는 매번 이런 식입니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청춘 남녀의 대화는 아닙니다. 단조롭고 소박하면서도 둘러대는 것 없이 직설적입니다. 황정은의 소설에서는 대화를 큰따옴표 표시를 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두 사람은 그런 대화를 나누며 부지런히 걸어서 해가 거의 저문 무렵이 되어서야 외딴 축사에 다다릅니다. 농부 부부의 호의로 은교 씨와 무재 씨는 산골 마을 농가에서 하룻밤 신세를 집니다. 소설가 황정은은 이 농가에서의 하룻밤을 풍경화와 추상화를 섞은 듯한 문장으로 묘사합니다.

은교 씨와 무재 씨, 연애를 시작하다

좋아한다고 고백도 했고, 섹스라는 단어도 입에 올렸으니 은교 씨와 무재 씨는 화끈한 연애를 시작할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둘은 연애를 시작하기는 했는데, 황정은 특유의 문장처럼 너무나 세밀하여 느릿느릿하기까지 합니다. 역시 은교 씨와 무재 씨의 대화입니다.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 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렇게 되나요.
계란 먹을래요?
네.

하하. 너무나도 영악하고 닳고 닳은 세태를 살다 보니 세상에 이런 남과 여의 청춘이 있을까,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사랑이 있을까 싶어지는 은교 씨와 무재 씨의 대화입니다. 

소설 <백의 그림자>의 등장인물은 모두 은교 씨와 무재 씨 같습니다. 전구를 사러 오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전구를 한 개 더 끼워 주는 전구 가게 '오무사' 할아버지. 머리가 좋아 보이기도 하고 부족해 보이기도 하고 눈치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 너무 있어 보이기도 한 유곤 씨. 왜 그런 분들 있잖아요. 저렇게 속이 없이, 또는 속이 꽉 차 세상을 어찌 살아갈까 하는 분들이요.

그리고 <백의 그림자>의 등장인물은 모두 그림자가 일어서는 경험을 공유합니다. 현실이 너무나 막막할 때, 숨쉬기조차 어려울 때 그림자가 일어서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무재 씨의 아버지처럼 그림자가 일어서 죽은 사람들도 있고, 은교 씨와 무재 씨처럼 그림자가 일어섰지만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자상가 '가'동의 철거

아무튼, 어느 날밤 전자상가 가동이 철거되고 철거된 자리에는 거짓말같이 새파란 잔디가 깔린 공원이 조성됩니다. 그런 와중에 은교 씨와 무재 씨의 연애는 아주 천천히 전개됩니다. 같이 점심을 먹고, 정종과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배드민트를 같이 치기도 하면서. 그리도 심지어 몇 주간 서로 못 만나기도 합니다. 

'나'동에서 일하고 있는 은교 씨와 무재 씨는 언제가 나동도 철거가 될 것이기에 새로운 일터를 찾아야 된다고 말합니다. 이때부터 은교 씨는 그림자를 자주 의식하게 되고, 무재 씨도 그림자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며 무재 씨의 등에 바짝 붙기도 하면서 잠을 못 자기도 합니다. 

메밀국수를 먹기 위해 무재 씨의 집에 은교 씨가 스물아홉 번째의 가장 작은 마뜨료슈까 인형을 실수로 깨트리고 미안해하자 무재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뜨료슈까는요, 속에 본래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알맹이랄 게 없어요. (···)마료료슈까 속엔 언제까지나 마뜨료슈까가 실로 반복되고 있을 분이지 결국엔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처럼 공허하기 때문에 나는 저것이 사람 사는 것하고 어딘가 닮았다고 늘 생각해 왔어요.

세상을 살다 보면, 기본적으로, 사는 것이 그렇다는 무재 씨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저에게도 많은 것 같습니다. 둘은 그렇게 위태롭고 목이 종종 막히는 연애를 이어갑니다. 

섬에 갇힌 은교와 무재

메밀국수 같이 차가운 음식 말고 따뜻한 음식, 먹으면 배가 따뜻해지는, 따끈하고 맑고 개운한 국물이 있는 것을, 듬뿍 먹고 싶다는 말 은교 씨의 말을 기억한 무재 씨는 어느 날 따끈하고 맑고 개운한 국물을 먹으러 가자며 은교 씨를 불러냅니다.

은교 씨와 무재 씨가 처음으로 하는 데이트다운 데이트랄까요? 그런데 어느새 소설 <백의 그림자>의 마지막 장입니다. 어디를 가느냐는 은교 씨의 말에 조개탕을 잘하는 식당이 있는 섬으로 간다고 합니다. 삼만 원을 주고 산 중고차를 타고서 말입니다. 그들 여행이 왠지 불안해집니다.

이십여 분간 배를 타고 들어간 그 섬에서 둘은 조개탕을 배불리 먹고 섬을 조망할 수 있는 사찰에 올라 염전이며 갯벌을 구경합니다. 사방이 어둑어둑해지고 둘은 서둘러 나루터로 행했지만 길을 잘 못 들어선 데가 자동차마저 엔진이 멈추어서고 맙니다.

황량한 벌판에서 은교 씨는 무재 씨의 손을 잡고 나루터로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배는 끊겼지만 나루터 부근엔 사람들이 살 것이란 희망으로, 어둠 속에서 자신의 것인지 무재 씨의 것인지 모를 그림자가 따라오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은교 씨는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것은 전혀 무섭지 않다고 생각하며, 탁하게 번진 달의 밑을 무교 씨와 함께 걷습니다.

소설 <백의 그림자>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황정은 이 마지막 문장을 쓰기 위하여 백의 그림자를 썼다고 했습니다.

은교 씨.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노래할까요.

2010년 판 표지

소설 백의 그림자 해설

황정은의 문장을 읽노라면 김훈의 문장이 떠오르고 프란츠 카프카의 주인공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은교 씨와 무재 씨의 연애 소설입니다. 그런데 둘의 연애를 보면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이 시대의 연애담은 아닌 것처럼 읽힙니다.

그들의 연애가 고루하기까지 보이는 까닭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지나치게 맑고 화사한 사랑만을 접해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은교와 무재 씨와 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음을 이 소설은 조용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황정은 작가는 2009년 봄과 여름에 이 소설을 썼다고 했습니다. 정오까지 소설을 쓰고 오후엔 전철을 타고 용산으로 가서 용산참사,라고 적힌 전단을 건네기도 하고, 저녁 일곱 시가 되면 어디선가 모여든 사람들과 길바닥에 앉았다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일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소설 쓰기밖에 없어 이 소설을 썼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용사참사는 점점 잊혀 갑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아픔을 딛고도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설 백의 그림자는 그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하는 소설이자, 누군가가 그림자가 일어서는 일이 없도록 염원하는 소설입니다.

작가의 말에서 "밤길에 간 두 사람이 누군가 만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습니다. 2022년 다시 쓰는 작가의 말에서는 "세상의 폭력은 더 노골적인 쪽으로 그걸 감추는 힘은 더 교묘하게 감추는 쪽으로 움직여 왔습니다만, 그간 전야를 생각하는 일과 조심하는 마음을 저는 단념하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다시 쓰는 후기

더 교묘하게 감추는 쪽으로 움직이는 폭력을 조심하는 마음을 단념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이 백의 그림자에는 흐르고 있습니다. 한자 百에는 일백 외에도 여러, 모두, 모든의 뜻이 있으니 백의 그림자를 세상의 온갖 그림자쯤으로 풀어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림자를 소재로 문학작품이 더러 있습니다. 황정은의 그림자와는 달리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는 자신의 그림자를 팔고 금화가 고갈되지 않는 마법의 주머니를 얻은 사나이의 이야기가 나오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는 세계의 끝에 들어가기 위해 그림자를 강제로 잘려버린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누구나에게나 그림자는 있을 것입니다. 그림자가 일어서지 않도록, 혹은 그림자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모두 건강하고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소설가 황정은의 다른 소설

 2019년 소설가가 뽑은 올해의 소설로 두 중편,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를 묶은 연작 소설 황정은 작가의 <디디의 우산>↗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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